,

위기관리에서 가시성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에서 가시성은 위기 국면에서 누가 그리고 무엇이 사람들 눈에 얼마나 보이는가를 말합니다. 관리해야 할 대상은 셋으로 나뉩니다. 문제를 책임지는 리더가 얼마나 보이는가, 회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얼마나 보이는가, 그리고 사안 자체가 얼마나 넓게 그리고 오래 주목받는가입니다. 위기관리는 앞의 둘을 필요한 만큼 확보하고 마지막 하나를 짧게 끝내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가시성은 세 가지 대상으로 나누어 관리합니다

현장에서 가시성이라는 말은 자주 엇갈리게 쓰입니다. 한쪽에서는 대표이사의 가시성을 높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사안에 대한 주목도를 낮추라고 합니다. 같은 회의에서 두 조언이 함께 나오면 담당자는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두 조언은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킵니다. 대상을 나누면 충돌이 사라집니다.

가시성의 대상무엇이 보이는가위기 시 관리 방향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
리더의 가시성최고경영진이 언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가전략에 따라 시점과 형식을 정해 확보함나서야 할 때 보이지 않거나, 나서지 않아야 할 때 나섬
대응의 가시성회사가 지금 무엇을 확인하고 있고 무엇을 조치했는가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구간에도 진행 상황을 계속 알림정보의 진공이 생겨 추측과 상대의 주장이 그 자리를 채움
사안의 가시성해당 위기나 이슈가 얼마나 넓게 그리고 오래 회자되는가신속하게 낮추어 짧게 끝냄주목이 증폭되고 장기화되어 실패 사례로 기록됨
표. 가시성의 세 가지 대상과 관리 방향 — 스트래티지샐러드

리더의 가시성과 대응의 가시성은 확보의 대상이고, 사안의 가시성은 축소의 대상입니다. 앞의 두 가지를 제때 확보하는 일이 마지막 하나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표의 순서를 따릅니다.

리더의 가시성은 전략으로 결정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사장이 나오라는 요구가 나옵니다. 언론과 일부 전문가도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와 사과하고 위기를 관리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이라는 말은 전략이 없다는 뜻입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기반해 최선의 전략을 정한 뒤 노출을 관리하는 것이 실무의 순서입니다.

기준은 최고경영진의 개인적 호오가 아니라 미리 규정해 둔 판별 기준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은 나서실 시기가 아니라는 조언과 이제는 직접 나서실 시기가 되었다는 조언을 모두 내부에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두 가지 오류가 대칭으로 발생합니다. 나서지 않아야 할 상황에서 자발적 노출을 원하는 최고경영자를 막지 못하는 경우와, 반드시 나서야 하는 중대한 상황에서 그분의 불편한 기색을 살피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입니다.

일부 기업은 이 기준을 매뉴얼에 명문화해 둡니다. 안전, 품질, 서비스, 사회적 책임에 관한 위기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일선에서 위기관리 전반을 이끌고 이해관계자 노출을 진행한다는 방식입니다. 문제를 제기한 고객을 최고경영자가 직접 찾아가 해결하는 모습도 같은 규정에서 나옵니다.

노출의 목적에 대한 오해도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앞에 나서는 것은 강력한 책임을 강조하거나, 강력한 대응을 강조하거나, 사과를 전하거나, 개선을 약속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만이 목적은 아닙니다.

대상에는 회사 밖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평소 직원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하던 최고경영자가 위기 국면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위기 시 최고책임자가 가장 바빠지는 것은 당연하며, 그 시간을 상황 관리에 쓰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생긴 사내의 공백도 관리의 대상입니다. 설명 없이 사라진 자리를 두고 조직은 각자의 해석을 키웁니다.

전략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지난 위기 때는 나와서 사과하던 최고경영자가 이번에는 왜 나오지 않는가, 빨리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왜 그러지 않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곧 전략입니다. 이번에는 꺼리셔서, 또는 나서신 전례가 없어서라는 답은 전략이 아닙니다.

현장의 가시성은 리더의 열린 자세와 조언자의 용기, 두 결합이 만듭니다

재해나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리더는 현장에 있어야 하며, 최소한 현장에서 가시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다만 가시성은 등장 여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까지가 가시성의 내용입니다.

2010년 4월 멕시코만에서 시추 시설 폭발로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해 5월 2일 미국 대통령은 루이지애나주 베니스 현장을 찾아 대응 브리핑을 받은 뒤 야외에서 발언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였고, 그는 우산 없이 검은 점퍼 차림으로 섰습니다. 공식 기록에 남은 그날의 문장은 간결합니다. 이번 유출의 책임은 BP에 있으며 비용도 BP가 부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즉흥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색의 점퍼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선택이었고, 우산을 쓰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주민과 방재 작업에 나선 이들과 같은 조건에 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연설문은 미리 비닐로 한 장씩 포장되어 있었고, 마이크는 빗물에 견디는 것이었으며, 배경은 실내가 아닌 해변이었습니다.

장치를 준비하는 일은 실무의 몫이지만, 그 장치가 실행되려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리더의 열린 자세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거나 비를 맞는 일은 싫다는 반응이 나오는 순간 그 장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조언자의 용기입니다. 어떻게 리더에게 비를 맞으시라고 말씀드리겠느냐며 큰 우산을 준비하는 순간에도 결과는 같습니다. 국내에서 재해 현장을 찾는 리더의 뒤로 우산을 든 수행이 따라붙는 모습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평시에 높여 둔 가시성은 위기 시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거의 모든 기업의 홍보 조직은 최고경영자를 가장 강력한 자산의 하나로 꼽습니다. 개인의 얼굴을 통해 회사가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 과정에서 관계 자산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기조연설과 인터뷰, 사회공헌 현장의 장면들이 그렇게 축적됩니다.

문제는 그 자산이 리더 개인에게 묶여 있다는 점입니다. 그가 사법 사안이나 도덕적 논란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축적된 가시성은 그대로 회사 평판의 손실로 옮겨 갑니다. 개인을 향해 쌓은 호감일수록 회수될 때의 낙폭도 큽니다.

그러므로 평시의 가시성은 그 리더가 위기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계되어야 합니다. 가시성을 무제한으로 키우는 홍보는 위기관리 관점에서 준비가 아니라 노출의 확대입니다.

대응의 가시성은 내용이 없는 구간에도 유지합니다

위기는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 수요를 증폭시킵니다. 회사가 그만큼의 공급을 내놓지 못하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고, 그 자리에 공백이 생깁니다.

공백은 비어 있는 채로 남지 않습니다. 물음표와 부정확한 느낌표가 그 자리를 채우고, 확인되지 않은 해석이 사실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커뮤니케이션에는 하지 않는 선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메시지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응의 가시성은 내용이 정리되지 않은 구간에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원인과 피해 범위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지금 무엇을 확인하고 있고 누가 그 일을 맡고 있으며 언제쯤 결과를 알릴 수 있는지는 매일 말할 수 있습니다. 내용에 대해 말할 것이 없는 구간에도 진행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있습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 놓이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신속성은 준비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준비된 기업은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합니다. 신속하게 하지 못하는 기업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거나, 의사결정이 정리되지 않았거나, 내놓을 사실과 논리가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때늦은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의 품질까지 낮은 경우가 많고, 억지 해명으로 채워지면서 진정성까지 의심받습니다.

위기관리 컨설팅 스트래티지샐러드 — 위기관리에서 가시성이란 무엇인가 비교표. 항목: 리더의 가시성, 대응의 가시성, 사안의 가시성
표. 가시성의 세 가지 대상과 관리 방향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 표를 한 장으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사안의 가시성은 짧게 끝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위기나 이슈는 유형과 무관하게 다수의 공중과 이해관계자가 집중적으로 주목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는 상황을 위기나 이슈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내부가 패닉에 빠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상황이 위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안의 중심에 선 기업이 잡아야 할 방향은 분명합니다. 관련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주목도를 신속하게 낮추는 것입니다. 신속한 사과, 해명, 과감한 개선 조치의 발표, 재발 방지 대책의 공표, 책임자의 퇴진, 충분한 피해 보상, 그리고 앞에서 다룬 리더의 가시성 확보는 모두 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실행입니다. 결과적으로 주목도가 내려가면 그 전략은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대로 적절하지 못한 대응은 주목도를 오히려 끌어올리거나 그대로 유지시킵니다. 전략적이지 않은 해명은 주목도를 폭발적으로 악화시키고, 관리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스스로 더하면 그 기간이 상당히 연장됩니다.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신호는 비교적 알아보기 쉽습니다. 비판 패러디와 밈이 나오기 시작하고, 기사와 만평에서 비웃음의 소재가 되는 시점입니다. 그 단계에 이른 사안은 오랫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여러 위기관리 교과서와 기록물에 실패 사례로 남습니다.

과거에는 보도 자체를 빼거나 고치는 방식으로 주목도를 관리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환경에서 그 방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남은 방법은 사안을 실제로 해소해 주목의 이유를 없애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대상 모두에 걸리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가시성의 수준을 정하는 쪽은 회사이지만, 그 수준을 판정하는 쪽은 이해관계자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하이 프로파일, 로우 프로파일,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다른가: 노출 수준을 정하는 전략 축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시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회사를 대신해 보이는 자리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에서 기업의 인간화란 무엇인가: 리더가 회사의 얼굴이 되는 이유를 다룹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내용이 없는 구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답해야 하는가의 범위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Remarks in Venice, Louisiana, May 2, 2010, Public Papers of the Presidents (DCPD-201000331) — 현장 발언의 공식 기록
U.S. CDC, CERC Manual 2018 update — 여섯 원칙 가운데 「신속하라」
가시성을 리더·대응·사안의 세 대상으로 나누어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10월 2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