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이란 기업이 공식 커뮤니케이션에서 사실로 단언한 내용 또는 그 단언이 만든 인상이, 해당 위기의 관리 기간 안에 검증을 거쳐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정된 것을 의미합니다.

철학의 거짓말은 화자의 마음에서, 기업의 거짓말은 검증에서 출발합니다

철학의 전통적 정의는 화자의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은 거짓말을, 거짓이라고 믿는 진술을 상대가 참으로 믿도록 의도하고 말하는 것으로 정리합니다. 같은 백과사전은 참인 말로 상대를 오도하는 것을 거짓말과 구별해 기만으로 분류합니다.

기업 위기에서는 이 전제가 대부분 생략됩니다. 기업이 참이거나 부분적으로 참이라고 믿는 내용을 대변인이 참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법도 같은 방향을 봅니다. 예를 들어 자본시장법 제125조는 증권신고서의 중요사항에 거짓 기재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빠진 경우 배상 책임을 정합니다. 단, 기업이 상당한 주의를 다했음에도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책임을 면합니다. 즉 법은 기재가 사실과 달랐다는 결과로 먼저 책임을 묻고, 몰랐다는 사정은 기업이 스스로 증명할 때에만 책임을 면해 줍니다. 이렇듯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은 윤리의 개념이라기보다 판정의 개념입니다.

단언이 없으면 거짓말 논란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단언에서 시작해 논란과 검증을 거쳐 판정으로 성립합니다.

첫째는 단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언은 내부에서도 확인하지 못한 사실관계, 외부에서 검증이 끝나지 않은 사실관계, 아예 검증될 수 없는 사실관계를 사실로 못 박아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단언을 구체적으로, 확신에 차서 내놓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비전략적인 하이 프로파일이라고 부릅니다. 하이 프로파일과 로우 프로파일은 본래 전략을 전제로 판단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을 생략하고 본능적으로 하이 프로파일을 택했다는 뜻입니다. 검증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업은 단언하지 않고, 부인하지 않고, 거짓 인상을 만들지 않습니다.

둘째는 논란과 검증입니다. 회사의 단언과 다른 사실이 외부에서 제시되면 논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제시만으로 검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의혹이나, 이해관계자의 판단이 둘로 갈린 상태는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은 단계입니다. 제시된 사실이 핵심 이해관계자 대부분에게 정확하게 증명되었을 때 비로소 검증이 끝납니다. 기업 내부의 사실은 칼로 자르듯 참과 거짓으로 나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단계가 길어지기 쉽고, 그래서 소송이 존재합니다.

셋째는 판정입니다. 검증이 끝나 단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확정되는 것을 판정이라 하며, 거짓말은 이 판정이 내려졌을 때에만 성립합니다. 판정은 통상 규제기관의 조사, 법원의 판단, 객관적 증거의 공개로 이루어집니다. 단언이 논란과 검증을 불러일으키더라도 최종 판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판정이 기존 위기관리에 직접 영향을 줄 만큼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 사실관계라면 처음부터 단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기를 넘겨 이루어지는 판정은 기존 위기와 다른 별도의 위기로 다룹니다. 이 정의에서 말하는 관리 기간은 이 근접한 시기를 뜻합니다.

거짓말에 대한 책임의 크기는 단언과 사실의 어긋남에서 읽히는 기업의 의도가 정합니다. 예를 들어 법적 책임이 걸린 핵심 사안에 대해 회사가 사실과 다르게, 그것도 강하게 책임의 부재를 단언했다면, 이해관계자는 판정 직후 회사가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했다고 유추합니다. 이 유추가 가능해지는 순간 어긋남은 실수의 문제를 넘어 은폐의 문제로 받아들여집니다. 참인 문장만 골라 거짓 인상을 만드는 팔터링(paltering)도 그런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격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팔터링 연구를 발표한 토드 로저스(Todd Rogers) 등 연구진은 한 가지 실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팔터링으로 상대를 오도한 사람은 스스로 진실을 말했다고 여기지만, 듣는 쪽은 속았다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구분정의가르는 기준예
단언내부에서 확인하지 못했거나, 외부에서 검증이 끝나지 않았거나, 검증될 수 없는 사실관계를 사실로 못 박아 말함. 참인 문장으로 만든 거짓 인상도 포함함전략적 판단을 거쳤는가, 내부에서 확인한 사실인가. 확인된 사실을 확인된 범위에서 말하거나 평가를 평가로 밝히면 해당하지 않음원인 조사가 끝나기 전에 「제품 결함은 없다」고 발표함
논란과 검증단언과 다른 사실이 제시되고, 핵심 이해관계자 대부분에게 증명되어 가는 과정다른 사실이 핵심 이해관계자 대부분에게 정확하게 증명되었는가. 제시, 의혹, 판단이 갈린 상태는 아직 판정 전임내부 문건이 보도되어 경영진이 결함을 언제 알았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짐
판정규제기관 조사, 법원 판단, 객관적 증거 공개로 단언이 사실과 다르다고 확정됨. 이때 거짓말이 성립함기존 위기관리에 직접 영향을 줄 시기 안에 확정되었는가. 그 뒤의 판정은 별도의 위기. 검증될 수 없는 사실과 가치 평가는 판정 대상이 아님규제기관 조사로 회사가 발표 전에 결함을 보고받은 사실이 확인됨
어긋남과 책임단언과 판정된 사실의 차이. 그 내용과 단언 방식에서 기업의 의도가 읽힘사안의 무게와 단언의 강도에서 숨기려는 의도가 읽히는가. 내부 보고가 틀린 경우와 핵심 사안의 책임 부재를 강하게 단언한 경우는 책임의 크기가 다름결함 책임이 없다고 강하게 단언한 것이 판정 직후 은폐 시도로 받아들여짐
표.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이 성립하는 단계와 구분 기준 — 스트래티지샐러드

전략적 거짓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검증 가능성을 전제로 판정되는 결과론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전략적 거짓말이란 검증될 수 있는 거짓을 의도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뜻이 됩니다.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고 검증될 줄 알았음에도 거짓을 말했다면 그 기업은 악당이고, 검증될 줄 몰랐다면 바보입니다. 전략적 노코멘트는 있어도 전략적 거짓말은 없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팅 스트래티지샐러드 —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비교표. 항목: 단언, 논란과 검증, 판정, 어긋남과 책임
표. 위기관리에서 거짓말이 성립하는 단계와 구분 기준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 표를 한 장으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이란 무엇인가: 제3자 검증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공개 판단을 다룹니다.
하이 프로파일, 로우 프로파일, 리액티브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다른가: 커뮤니케이션 수위를 정하는 프로파일의 개념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언하지 않는 구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노코멘트는 해도 되는가: 전략적 노코멘트가 성립하는 조건입니다.

근거로 삼은 자료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The Definition of Lying and Deception」, 2008년 초판, 2015년 개정. plato.stanford.edu
Todd Rogers, Richard Zeckhauser, Francesca Gino, Michael I. Norton, Maurice E. Schweitzer, 「Artful Paltering: The Risks and Rewards of Using Truthful Statements to Mislead Other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3), 456–473, 2017. doi.org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25조. law.go.kr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10월 12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