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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은 핵심 이해관계자가 기대하는 수준에 맞추어 확인된 사실을 제때 그리고 반복해서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기준은 회사의 결심보다 상대의 눈높이에 있습니다. 그 눈높이에 못 미치면 은폐로 읽히고, 필요 이상으로 넘어서면 스스로 다음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가진 정보를 모두 털어놓는 고해성사로 투명성을 이해하는 순간 기업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투명성은 전부 공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위기관리 업계에는 투명성이 위기 시 기업의 모든 「더러운 빨래(dirty laundry)」를 바깥에 널어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투명성에 관한 조언 앞에서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밝혀야 투명한 것인지 기준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더러운 빨래를 널고 싶어 하지 않으며, 반대로 대부분의 상대도 그것을 굳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안을 빌미로 다른 의지를 관철하려는 일부 이해관계자를 제외하면, 위기를 겪는 기업의 밑바닥까지 들추려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찾아야 하는 것은 적절한 균형입니다. 투명성의 기준은 핵심 이해관계자의 눈높이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개 범위를 먼저 정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일입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핵심 이해관계자가 무엇을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실무 기준은 제3자가 검증할 수 있는가입니다

눈높이라는 기준은 방향은 알려 주지만 당장의 판단에는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쓰는 기준은 더 단순합니다. 해당 정보가 제3자 검증이 가능한가입니다.

제3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면 최대한 공개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검증 가능한 사실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비치는 순간, 사안 자체보다 은폐가 더 큰 문제로 자리를 옮깁니다. 반대로 제3자 검증이 불가능한 정보에 한해서만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가능합니다. 그 경계가 곧 투명성의 허용 범위입니다.

문제는 검증 가능 영역이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내 기록, 거래 데이터, 내부 제보, 온라인에 남은 흔적이 모두 검증의 재료가 됩니다. 기업이 투명성을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투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경계를 잘못 읽었을 때 나타나는 전형이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입니다. 문제를 최고경영진이 알았다고 하면 악당이 되고, 몰랐다고 하면 바보가 됩니다. 위기 시에는 많은 기업이 악당보다 차라리 바보처럼 보여지려 합니다. 그러나 규모가 크고 기간이 길었던 사안에서 최고경영진이 전혀 몰랐다는 설명은 좀처럼 신뢰받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설명이 이후 조사로 뒤집히면, 원래의 사안에 은폐라는 별도의 사안이 더해집니다.

구분핵심 이해관계자의 관심이 높음핵심 이해관계자의 관심이 낮음
제3자 검증이 가능함가장 먼저 공개하고 인정함묻기 전에 정리해 두고, 물으면 지체 없이 제공함
제3자 검증이 어려움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밝히고 확인 일정을 제시함공개 여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되 그 판단 근거를 기록함
표. 정보의 성격에 따른 공개 판단 — 스트래티지샐러드

네 칸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자주 틀어지는 곳은 「제3자 검증이 가능함」과 「관심이 높음」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의 정보를 늦게 내놓으면 사안이 은폐로 옮겨 갑니다. 「제3자 검증이 어려움」 쪽은 판단의 여지가 있는 구간이므로, 그 판단을 언제 무엇을 근거로 내렸는지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속도와 빈도가 투명성의 인상을 만듭니다

투명성은 공개한 정보의 양으로만 평가되지 않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위기 발생 직후 신속하게 전달되면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시기를 놓치고 한참 침묵한 뒤에 같은 말을 하면 투명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17년 긴급 위험 커뮤니케이션 지침에서 일관된 메시지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안 초기에 나와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초기 메시지가 없는 공백이 소문이 자리 잡도록 허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CERC 원칙이 첫 번째로 「신속하라」를 두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빈도도 함께 작동합니다.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정기적인 업데이트가 이어지면 그 대응에는 투명성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중단되거나 업데이트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면 그때까지 쌓은 평가도 함께 내려갑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투명성을 지킵니다

위기 초기에 회사가 가진 정보는 늘 불완전합니다. 이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확정적으로 말하면 정정해야 할 순간이 오고, 정정은 곧 신뢰의 손실로 돌아옵니다.

해법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확인 중인 것을 구분해 밝히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 지침은 위험과 대응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명시하고 현재 무엇이 알려져 있고 무엇이 알려져 있지 않은지를 밝히도록 권고합니다. CERC의 「정확하라」 원칙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함께 말하라는 주문입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모범 실무 원칙을 정리한 연구자 매튜 시거(Matthew W. Seeger)가 전문가 패널 논의를 거쳐 제시한 원칙에도 정직·솔직·개방성과 함께 불확실성의 인정이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 원칙은 말하지 않는 선택과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사실 확인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나, 지금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전략적 침묵은 말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투명성과 부딪히는 것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침묵입니다.

위기관리 컨설팅 스트래티지샐러드 — 위기관리에서 투명성이란 무엇인가 비교표. 항목: 제3자 검증이 가능함, 제3자 검증이 어려움
표. 정보의 성격에 따른 공개 판단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 표를 한 장으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투명성은 위기 이전에 쌓이는 자산입니다

평소 투명해 보이지 않던 기업이 위기 시에만 투명해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평소 투명하게 인식되던 기업이 위기 시에도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 점이 투명성을 위기관리의 영역에 두는 이유입니다. 위기가 발생한 뒤에 꺼내 쓰는 데미지 컨트롤의 기술이라기보다, 평시에 축적해 두어야 확보되는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평소 투명성의 가치를 얼마나 구현해 왔는가가 그 자체로 중요한 위기관리 역량이 됩니다.

투명성은 고해성사가 아닙니다. 영원히 그럴 수도 없습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밝혀야 할 것을 제때 밝히는 일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투명성의 기준이 되는 눈높이를 가진 주체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평시에 갖추어 두어야 하는 조건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사실을 아직 말할 수 없는 구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말하지 않는 선택이 성립하는 좁은 조건을 다룹니다.
답변책임(answerability)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답해야 하는가의 범위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WHO, Communicating risk in public health emergencies (2017) — 권고 A.1, A.2, C4.2
U.S. CDC, CERC Manual 2018 update — 여섯 원칙
Matthew W. Seeger, Best Practices in Crisis Communication, Journal of Applied Communication Research (2006) — 전문가 패널이 정리한 실행 원칙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위 자료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핵심 이해관계자의 눈높이와 제3자 검증 가능성이라는 두 기준으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9월 28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