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란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입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용민 대표가 30년 가까운 위기관리 현장 경험에서 정리해 온 실무 정의입니다. 학계의 정의들이 위기관리의 범위와 구조를 설명한다면, 이 정의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학계는 위기관리를 이렇게 정의해 왔습니다

상황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SCCT)을 정립한 위기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티모시 쿰즈(W. Timothy Coombs)는 위기관리를 위기와 싸우고 위기가 입히는 실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계된 일련의 요소들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이 요소들을 위기 전, 위기, 위기 후의 세 국면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학술지 Academy of Management Review에 조직 위기 연구의 기준이 된 논문을 발표한 경영학자 크리스틴 피어슨(Christine Pearson)과 주디스 클레어(Judith Clair)는 위기관리를 조직 구성원들이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위기를 피하려 하거나, 발생한 위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체계적 시도라고 정의했습니다. 기업 위기관리 연구의 개척자로 꼽히는 이안 미트로프(Ian Mitroff)는 신호 감지, 탐색과 예방, 피해 억제, 회복, 학습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로 위기관리의 범위를 제시했습니다.

표현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위기관리는 발생 이후의 대응에 그치지 않고 발생 이전의 예방과 이후의 학습까지 포괄하는 활동이며, 그 목적은 피해의 최소화와 이해관계자 관계의 보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는 더 짧은 정의가 필요합니다

학술적 정의는 위기관리의 지도를 그려 줍니다. 다만 위기의 한복판에서 몇 시간 안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영진에게는 손에 쥘 수 있는 기준이 따로 필요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이 정의는 그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마땅함과, 언제 할 것인가에 대한 적시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위기 앞에서 던질 질문도 둘로 정리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의 적시는 언제인가.

적시의 가장 이른 형태는 위기 발생 전입니다. 위기관리의 본령은 발생 가능한 위기를 예상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리 해 두는 사전 활동에 있으며, 발생 이후의 활동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단기화하는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해당합니다.

마땅함은 전제와 책임에서 나옵니다

마땅함은 기업이라는 존재의 전제들로부터 나옵니다. 기업은 선의(善意)의 행위자라는 전제 위에서 사업하고, 경영진에게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충실의무가, 직원들에게는 성실의무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이 전제들이 각 상황에서 구체화된 것이 곧 그 시점에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조건에 관해서는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책임의 관점에서도 같은 구조가 확인됩니다. 평시에는 맡은 일을 해내는 수행책임(responsibility)이, 위기 시에는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하고 감당하는 결과책임(accountability), 그중에서도 답하는 몫인 답변책임(answerability)이, 사후에는 법이 묻는 법적 책임(liability)이 각각 그 국면의 마땅함을 규정합니다. 위기 전이라면 위험 신호를 보고하고 고치는 일이, 위기 중이라면 피해자를 살피고 사실을 설명하는 일이, 위기 후라면 재발을 막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 그 내용입니다.

마땅함의 최종 판정자는 이해관계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위기를 맞은 기업을 보며 저 회사가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를 읽습니다. 그렇게 읽히는 기업의 위기는 수주의 주목으로 마무리되고, 반대로 읽히는 기업의 위기는 몇 배의 기간으로 연장됩니다.

국면작동하는 책임마땅히 해야 할 일적시
위기 전수행책임(responsibility)위험 신호를 보고하고 고치는 일신호를 인지한 때
위기 중결과책임(accountability)과 그중 답하는 몫인 답변책임(answerability)피해자를 살피고 사실을 설명하는 일심각성을 인지한 그날
위기 후법적 책임(liability)재발을 막고 약속을 지키는 일조사와 판단이 끝난 뒤
표. 국면별 마땅함과 적시 — 스트래티지샐러드

사례에 대입하면 판단의 공백이 보입니다

가상의 상황입니다. 한 식품회사에 이물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금속 조각으로 추정되는 이물이 영유아용 제품에서 나왔다는 내용이었고, 내부 첫 보고에서도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안이라는 판단이 공유되었습니다. 모든 이물 신고가 이런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므로, 이 전제가 이후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각 부서는 각자의 기준대로 움직입니다. 품질팀은 제조 공정에서 혼입된 것인지 소비 단계에서 들어간 것인지 원인 조사에 착수하고, 법무팀은 사실 확정 전이니 책임을 인정하는 표현의 자제를 권고합니다. 영업팀은 판매 중단 시의 매출 영향과 거래처 반응을 계산하고, 홍보팀은 보도가 없는 단계이니 모니터링을 유지하자고 판단합니다. 부서마다 자기 소관에서는 모두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비어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심각할 수 있다고 회사 스스로 판단한 그 순간, 예상되는 피해로부터 고객을 보호하는 조치는 누구의 소관도 되지 못했습니다. 해당 로트(lot, 같은 조건에서 같은 시기에 함께 생산된 제품 묶음)의 특정과 유통 경로 추적, 출고 보류, 판매 채널 통지, 구매 고객 안내 같은 조치들은 원인 조사와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이 정의를 대입하면 판단이 정렬됩니다.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의 마땅함은 원인 규명에 앞서 고객 보호에 있고, 그 조치들의 적시는 인지한 바로 그날입니다. 조사의 완료를 기다릴 이유가 있는 것은 원인 발표이지 고객 보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유사 신고가 온라인에 쌓이고, 첫 보도가 나온 뒤에야 전사 회의가 열립니다. 이후의 전개는 회사의 선택 범위를 벗어납니다. 행정 당국의 회수 명령, 유통망에서의 제품 퇴출, 출고 중단, 사과와 보상, 그리고 소비자 소송까지 이어집니다.

이 대응을 앞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위기관리의 목적이 피해의 최소화와 이해관계자 관계의 보전이라면, 이 회사는 어느 쪽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고객의 피해 가능성은 조사 기간만큼 방치되었고, 소비자와의 관계는 심각성을 알고도 팔았다는 기억과 소송으로 남았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결국 다 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는 전부 늦었습니다. 이 정의가 하는 일은 부서별로 흩어진 합리성을 마땅함과 적시라는 하나의 기준 위에 정렬시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를 잘한다는 것

이 정의 안에서 위기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이해관계자들이 이미 학습하고 기대하는 당연한 행동들을 원칙에 충실하게 제때 해내는 것입니다. 위기관리에는 정답이 없고, 상황과 조건에 맞는 해답이 있을 뿐입니다. 완벽한 답을 찾느라 때를 놓치기보다, 충분히 좋은 답을 제때 실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 실력의 재료는 평시에 만들어집니다. 마땅함을 판단할 정무감각과 철학, 적시를 지킬 준비, 반복되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축적되어 있어야 합니다. 위기관리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짧은 정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준비는 짧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컨설팅 스트래티지샐러드 —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비교표. 항목: 위기 전, 위기 중, 위기 후
이 글의 핵심 비교를 한 장으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의 전제란 무엇인가: 마땅함이 나오는 기업의 전제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국면별로 작동하는 책임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 이전 국면과의 경계에 관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적시를 가르는 시간 개념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티모시 쿰즈(W. Timothy Coombs), Ongoing Crisis Communication(Sage). 위기관리의 정의와 위기 전·위기·위기 후 세 국면 구분.
크리스틴 피어슨과 주디스 클레어(Christine Pearson and Judith Clair), Reframing Crisis Management, Academy of Management Review(1998). 조직 위기관리의 정의.
이안 미트로프(Ian Mitroff)의 위기관리 5단계 모델(1994). 신호 감지에서 학습까지의 국면 구분.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9월 17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