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수행책임(responsibility), 그 결과에 대해 답하고 감당해야 하는 결과책임(accountability), 그리고 법이 묻는 법적 책임(liability)이 각각 다르게 작동합니다. 세 가지는 같은 사람에게 함께 오지 않으며, 하나를 이행했다고 나머지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위기 대응에서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은 대개 이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영어에는 우리말 「책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 위기관리에서 반드시 나누어야 하는 것이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입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책임으로 옮겨지지만 실제로 가리키는 대상은 다릅니다.
수행책임(responsibility)은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안전 점검을 맡은 담당자, 품질을 검수하는 부서, 협력사를 관리하는 라인이 각각 나누어 지고 있는 책임입니다. 아래로 위임할 수 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그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답하고 그 평가를 감당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나눌 수 없고 아래로 넘길 수도 없으며,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립합니다.
여기에 법적 책임(liability)이 더해집니다. 법원과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배상과 처벌의 문제입니다.
두 책임을 구분해서 보는 시각은 조직 이론과 거버넌스 연구에서 오래 다루어져 왔습니다. 영국의 행정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은 accountability를 다른 사람에게 답하고 그 판단을 받아야 하는 외부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는 내부적 의무인 responsibility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구분 | 수행책임 | 결과책임 | 법적 책임 |
|---|---|---|---|
| 묻는 것 | 누가 그 일을 했는가 | 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 | 누가 법을 어겼는가 |
| 작동 시점 | 위기 발생 이전 | 위기 발생 이후 | 사후 판단 |
| 나눌 수 있는가 | 나눌 수 있음 | 나눌 수 없음 | 법이 정함 |
| 판단하는 주체 | 회사 내부 | 이해관계자와 공중 | 법원과 수사기관 |
일은 아래로, 답변은 위로
두 책임은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수행책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조직이 일을 나누어 맡기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책임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최종적으로 답해야 할 사람은 위에 있습니다.
일은 여럿이 나누어도, 답변은 한 사람이 합니다. 그 한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는 사안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기 대응이 실패하는 지점은 두 방향이 같아지는 순간입니다. 일도 아래로 내려보내고 답변까지 아래로 내려보내는 경우입니다. 사고가 나면 현장 책임자를 앞에 세우고 담당 임원을 문책해 사안을 종결하려는 대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흔히 꼬리 자르기라고 부르는 것의 구조입니다.
답변을 아래로 내리면 다음 위기를 모르게 됩니다
꼬리 자르기의 문제는 도의적인 데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의 작동 방식을 망가뜨립니다.
회사가 위기를 미리 아는 경로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보고입니다. 이상 징후를 처음 보는 사람은 언제나 현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을 때 답변의 부담이 현장으로 내려간 전례가 생기면, 다음번에 이상 징후를 발견한 직원은 그것을 올리지 않습니다. 올리는 순간 자신이 그 사안의 답변자가 된다는 것을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조직 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이 병원 조직을 관찰하면서 확인한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오류 보고 건수가 많은 팀이 실제로 오류가 많은 팀이 아니라, 보고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팀이었습니다. 보고가 적은 조직은 안전한 조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직입니다.
결과책임을 아래로 내리면 수행책임의 기반까지 무너집니다. 보고가 끊긴 조직은 위기를 예방할 수 없고, 경영진의 판단은 틀린 사실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위험 신호가 불이익 없이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확인 항목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실무자를 지키는 일이 다음 위기를 아는 방법입니다.
법적으로 이겨도 책임은 남습니다
세 가지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직접 관여하지도 않은 사안에서 결과책임이 발생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협력사 사업장에서 일어난 중대재해, 가맹점에서 발생한 위생 사고, 인수하기 전에 벌어진 피인수기업의 부정행위가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 방어할 수 있고 인과적으로도 연결되지 않지만, 공중은 그 회사에 답을 요구합니다.
이때 위법 사항이 없다는 해명을 앞세우면 상황은 대개 나빠집니다. 법적 책임에 대한 답을 결과책임에 대한 답으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공중이 물은 것은 처벌받을 일인가가 아니라 이 회사가 이 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입니다.
법적 방어에 성공한 기업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은 대응이 부실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답해야 할 질문과 답한 내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깁니다.
세 가지를 따로 다루어야 합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누가 그 일을 했는가는 내부 조사가 밝힐 문제입니다. 무엇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법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할 것인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세 가지를 같은 자리에서 함께 처리하면 두 방향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내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법적 책임을 인정해 버리거나, 반대로 법적 방어 논리가 대외 메시지를 지배해 답해야 할 질문에 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는 실패는 후자 쪽입니다.
책임을 정확히 이행하려면 먼저 책임을 정확히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 국내 기업이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이 답하는 책임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82조의3
민법 제681조 · 제683조
Richard Mulgan, 「Accountability」: An Ever-Expanding Concept?, Public Administration (2000) —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의 구분
Amy C. Edmondson, Learning from Mistakes Is Easier Said Than Done, Journal of Applied Behavioral Science (1996) — 오류 보고와 심리적 안전에 관한 병원 조직 연구
위 개념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책임의 방향으로 정리하고 세 가지 책임의 분리 운용으로 구성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9월 8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