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위기관리는 기업의 존속과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위협하는 상황을 감지하고, 판단하고, 대응하여 그 위협을 관리하는 활동입니다. 국내에서 이 개념이 자주 흐려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기관리라는 같은 말을 정부와 공공기관도 쓰기 때문입니다. 두 체계는 이름만 같을 뿐 위기를 정의하는 방식도, 지켜야 할 대상도, 쓸 수 있는 수단도 다릅니다. 기업 위기관리를 정의하려면 먼저 이 둘을 갈라 놓아야 합니다.

같은 단어를 쓰는 두 개의 체계가 있습니다

국가의 위기관리에는 법이 있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재난의 유형을 정하고, 관리 책임 기관을 지정하고, 매뉴얼의 작성과 승인 절차를 규정합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제정한 것이 출발점이었고, 2014년 이 법에 관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현재의 체계가 자리 잡았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국제 표준으로는 ISO 22361이 조직의 위기관리 역량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침일 뿐 의무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을 위기로 볼지, 누가 판단할지, 무엇을 준비할지를 회사가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개별 국면에 걸리는 법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개인정보 보호법의 통지와 신고 의무가, 상장사라면 공시 규정이 작동합니다. 다만 이것들은 특정 사안에 붙는 의무이지, 무엇을 우리 회사의 위기로 볼 것인지와 어떤 체계로 그것을 관리할 것인지를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가 이후의 모든 것을 갈라놓습니다.

구분기업 위기관리정부·공공기관 위기관리
근거총괄 규율법 없음 (ISO 22361은 지침)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위기의 정의회사가 스스로 정의법령이 유형을 열거
지켜야 할 것사업의 존속과 신뢰국민의 생명·신체·재산
권한의 원천외부에 대한 강제력 없음 (설득에 의존)법이 부여한 강제력
매뉴얼의무 아님, 승인 절차 없음법정 의무, 승인 절차 있음
성패의 판정자이해관계자와 시장국민과 감사·국회
종결의 의미상황 종료 후에도 평판이 남음복구 완료로 종결
표. 두 위기관리 체계의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의 목록을 누가 만드는가가 다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게 위기의 유형은 주어집니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6년 7월 3일 기준 자료를 보면, 자연재난 15종과 사회재난 68종에 대해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성·운용되고 있습니다. 풍수해, 지진, 산불, 감염병, 다중운집인파, 행정정보시스템 재난처럼 유형이 이름을 갖고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기업에게는 그런 목록이 없습니다. 회사가 속한 산업, 사업 구조, 거래 관계, 조직 문화에 따라 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전부 다릅니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의 첫 단계는 대응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 회사의 위기인지를 발굴하는 작업입니다. 위기요소 진단이 기업 위기관리 프로젝트의 출발점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차이는 준비의 성격도 바꿉니다. 목록이 주어진 쪽은 각 유형에 대한 절차를 정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갑니다. 목록을 만들어야 하는 쪽은 아직 이름이 없는 상황까지 다룰 수 있는 판단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 다릅니다

정부의 위기관리가 지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입니다. 조직 자신의 존속이 목표가 아닙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인명 피해를 줄이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 성패의 기준이 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지키는 것은 사업의 연속성과 회사의 존속입니다. 그런데 기업의 존속은 이해관계자의 신뢰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제품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설이 복구되어도 소비자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체계는 종결의 의미가 다릅니다. 재난은 복구가 완료되면 종결됩니다. 기업의 위기는 상황이 정리된 뒤에도 평판이라는 형태로 남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기업 위기관리에서 부가 기능이 아니라 본체인 이유가 이 지점에 있습니다.

권한의 유무가 방법을 결정합니다

두 체계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권한입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법이 부여한 강제력을 갖습니다. 대피를 명령할 수 있고, 통행을 통제할 수 있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심각까지 단계별로 발령하면 관계 기관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지시가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기업에게는 그런 권한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비자에게 제품 사용을 중지하라고 명령할 수 없고, 언론에 보도를 멈추라고 지시할 수 없으며, 여론에 판단을 유보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을 전달하고 조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뿐입니다.

기업 위기관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설득의 작업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의 위기관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여러 기능 중 하나라면, 기업의 위기관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수단의 거의 전부입니다.

매뉴얼의 성격이 다릅니다

앞서 인용한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운용 중인 재난 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은 모두 15,137건입니다.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83건,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410건,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14,644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준매뉴얼은 행정안전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실무매뉴얼과 행동매뉴얼도 각각 승인 절차를 거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이런 구조가 없습니다. 만들 의무가 없고, 승인할 기관이 없고, 점검할 주체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매뉴얼은 만들어진 뒤 아무도 열어 보지 않는 상태로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매뉴얼이 살아 있는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이 차이에서 나옵니다.

내용의 얼개도 다릅니다. 공공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재난 유형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유형마다 별도의 문서가 만들어지고, 표준에서 실무로, 실무에서 현장조치로 내려가면서 기관별 임무와 조치 절차가 단계마다 구체화됩니다. 전체 15,137건 가운데 현장조치 행동매뉴얼이 14,644건을 차지하는 구성이 이 구조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대상이 정해져 있으므로 아래로 깊이 파고들 수 있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반대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어떤 유형의 위기가 올지 미리 확정할 수 없으므로, 유형을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하나의 공통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문서의 본체가 됩니다. 위기의 정의, 심각성 판단 기준, 단계별 대응 조직, 감지에서 종결까지의 프로세스, 부서별 역할과 책임이 그 뼈대입니다. 위기 유형별 시나리오는 이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검증하고 보완하는 부속물이지 매뉴얼의 중심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공공의 매뉴얼은 확정된 유형을 따라 아래로 깊어지고, 기업의 매뉴얼은 확정되지 않은 유형을 감당하기 위해 옆으로 넓어집니다.

공공기관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와 기업 매뉴얼을 만든 조직이 실전에서 그 문서를 쓰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유형별 절차는 촘촘한데, 목록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위기로 볼 것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업의 위기는 대부분 목록에 없는 형태로 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은 별개의 문서입니다. 앞의 것이 조직과 프로세스를 규정한다면, 뒤의 것은 대변인 체계와 핵심 메시지, 이해관계자별 대응 방식을 다룹니다. 두 문서의 역할을 구분하지 않고 한 권에 섞어 담으면 어느 쪽도 실전에서 쓰기 어려워집니다.

혼동은 실무에서 이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두 체계를 구분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은 대체로 셋입니다.

첫째, 위기경보 단계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경우입니다. 관심·주의·경계·심각의 네 단계는 국가적 대응 수준과 연동된 기준입니다. 기업의 심각성 기준은 회사의 대응 조직이 어느 단계에서 상향되는지와 연동되어야 합니다. 이름만 가져오면 단계는 있는데 그 단계에서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가 비어 있게 됩니다.

둘째, 위기관리를 안전·재난 부서의 일로만 두는 경우입니다. 사업장 사고와 설비 장애를 다루는 체계는 갖추어져 있는데, 언론 보도나 온라인 논란처럼 물리적 사고가 없는 위기를 다룰 체계가 없는 조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회사에 위기관리 매뉴얼이 두 권 있는데 서로를 모르는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셋째, 공공기관이 자신의 이중 지위를 정리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재난관리책임기관인 동시에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입니다. 법정 재난 대응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것과 별개로, 기관의 평판과 이해관계자 신뢰를 다루는 위기관리 체계가 따로 필요합니다. 전자만 갖춘 공공기관이 국정감사나 언론 국면에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기업 위기관리를 다시 정의하면

지금까지의 구분을 종합하면 기업 위기관리의 정의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법이 위기를 정의해 주지 않는 조건에서 무엇이 자기 회사의 위기인지를 스스로 발굴하고, 강제할 권한이 없는 조건에서 이해관계자의 이해와 수용을 얻어 내며, 상황이 종료된 뒤에도 남는 신뢰를 관리하는 활동입니다.

세 가지 조건 모두 정부의 위기관리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업 위기관리는 국가 위기관리의 축소판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작업입니다.

위기관리의 전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왔는가를 묻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법이 정해 준 것을 지켰는가로는 답이 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위기관리는 국민을 지키는 일입니다. 기업의 위기관리는 신뢰를 지키는 일입니다. 지켜야 할 것이 다르면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위기관리 컨설팅 스트래티지샐러드 — 기업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비교표. 항목: 근거, 위기의 정의, 지켜야 할 것, 권한의 원천, 매뉴얼, 성패의 판정자, 종결의 의미
표. 두 위기관리 체계의 비교 — 스트래티지샐러드. 위 표를 한 장으로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란 무엇인가: 위기관리의 정의와 국면별 책임에 관한 것입니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위기 이전 국면과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ERM, BCP, 위기관리는 어떻게 다른가: 인접 관리 체계와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4조의5 —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의 작성·운용과 승인. 2014년 2월 7일 시행(법률 제11994호)으로 신설
행정안전부, 위기관리 매뉴얼 안내 — 2026년 7월 3일 기준 재난 유형별 매뉴얼 현황(총 15,137건, 표준 83건·실무 410건·행동 14,644건), 자연재난 15종·사회재난 68종
ISO 22361:2022, Security and resilience — Crisis management — Guidelines — 조직의 전략적 위기관리 역량에 관한 국제 지침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 2004년 7월 대통령훈령 제124호, 국가 위기관리 활동의 개념과 기준
위 법령과 지침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체계의 비교, 권한 유무에 따른 방법의 차이, 혼동이 실무에서 나타나는 형태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 수록 항목입니다. 작성: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같은 글이 필자의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2026년 9월 19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