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리더들의 설화(舌禍)란 ‘공개된 말실수가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난’ 또는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로 정의된다. 여기에서 공히 ‘재난’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재난을 더욱 더 악화시키는 설화 이후의 위험한 2차 증상들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한 기업인이 이야기한 공개 석상에서의 말 한마디가 논란이 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수한 말은 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그 화자(話者)의 자리와 명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그 첫 마디가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말들이다.
첫 발언에 대한 즉각적 사과로도 끝날 수 있었던 사안이 며칠씩 이어지는 연속 보도가 되고, 사퇴 요구로 번지고, 끝내 자리를 내놓는 결말로 가는 과정을 오래 지켜봤다. 그 경로에는 유사하고 일정하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다. 일종의 공식과도 같아 보인다. 원발언의 수위와 무관하게, 사후 대응도 똑같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식이다. 논란 이후 확인 취재에 응하는 그 며칠, 이 구간을 ‘2차 커뮤니케이션 기간’이라 부른다. 실패 증상들은 언제나 여기서 나타난다.
왜 한 번 실수한 사람은 계속 말할까?
최초 말실수를 한 화자는 왜 그럴까? 왜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굳이 말을 보태 상황을 키울까? 주변에서는 답답해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심리학이 오래 관찰해 온 몇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첫째, 자기 생각을 부정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큰 고통이다. 공개적인 비난은 인간에게 물리적 위협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준다. 사회적 배척이 신체적 통증과 비슷한 뇌 영역을 자극한다는 연구들도 보고된 바 있다. 위협을 느낀 뇌는 싸우거나 도망치려 한다. 도망칠 수 없는 공인의 자리에서 남는 선택은 하나다. 싸우는 것이다. 그 싸움의 무기가 바로 ‘한마디 더’다. 게다가 위협 상태에서는 판단을 담당하는 이성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눌린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나오는 이유다.
둘째,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부조화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믿음과 ‘내가 잘못된 말을 했다’는 사실이 충돌하면, 사람은 둘 중 고치기 쉬운 쪽을 고친다. 사실 인식을 바꾼다. “내 말이 그렇게 틀린 건 아니다”로 해석을 조정하는 것이다. 사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면 자기 존재가 흔들리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다.
셋째, 이미 공개적으로 뱉은 말은 되돌리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공개 선언한 입장에 발이 묶인다. 여기에 몰입 상승이라는 힘이 더해진다. 이미 쏟아부은 것이 아까워 발을 빼지 못하고 오히려 더 밀어붙이는 심리다. 물러설수록 손해라고 느끼기에, 논리적으로는 후퇴가 맞는 지점에서도 계속 전진을 택한다.
넷째, 자신의 진심이 남들에게도 보일 것이라 착각한다. 이를 투명성 착각이라 부른다. 내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니 설명만 잘 하면 이해 받으리라 믿게 된다. 그래서 “한마디만 더 하면 풀린다”는 확신으로 계속 말한다.
다섯째, 주변에 남은 목소리가 왜곡되어 있다. 논란이 터지면 위로하는 사람만 연락한다. 비판하는 이들은 굳이 전화하지 않는다. 그 편향된 표본을 전체로 착각하는 것이 허위합의효과다. 자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의 비율을 실제보다 크게 추정하는 경향이다. 게다가 높은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반박을 들어 본 경험이 적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둔해진다는 연구도 있다.
여섯째, 비판하는 언론이 편파적으로 보인다. 적대적 매체 지각 현상이다. 같은 보도를 두고도 당사자는 유독 자신에게 불리하게 편집됐다고 느낀다. 그래서 화살이 자기 발언이 아니라 보도로 향한다.
이 여섯 가지 힘이 한꺼번에 화자를 밀어붙인다. 그러니 2차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는 그 사람이 유별나게 미숙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준비 없이 그 자리에 서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2차 커뮤니케이션 실패 증상을 미리 알아 두고 필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래는 실제 사례에서 관찰된 사후 2차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들을 유형별로 재구성한 것이다.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듯한 문장들일 것이다. 그만큼 반복되기 때문이다.
증상 1. 최악의 인용구를 스스로 생산한다
“내가 무슨 감옥 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요.”
“법에 걸리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들 이러십니까.”
“그 정도 말도 못 하면 세상 어떻게 삽니까.”
설화와 관련된 품위와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법에 걸리느냐 아니냐로 답하는 화법이다. 기준선을 스스로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 자리에 그 말이 어울리는가’를 묻는데, 당사자는 ‘처벌받을 일은 아니다’로 답한다. 질문과 대답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니 대중은 그 어긋남 자체를 문제로 읽는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이 문장들이 그 자체로 완결된 기사 제목이 된다는 점이다. 원발언이 흐릿해질 무렵, 당사자가 더 선명하고 더 자극적인 두 번째 인용구를 언론에 공급한다. 사그라들던 불에 스스로 기름을 붓는 격이다. 새로운 실패는 언제나 여기서 시작된다.
증상 2. 사과도 철회도 아닌 재확인
“억울한 면도 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표현이 좀 거칠었을 뿐이지, 취지는 그게 맞아요.”
“오해하신 분들껜 유감이지만,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영어권에서 더블다운(double down)이라 부르는 화법이다. 판돈을 두 배로 올린다는 뜻으로, 비판받은 입장을 거두기는커녕 더 밀어붙이는 태도를 가리킨다. 사과처럼 들리는 앞부분과 재확인인 뒷부분이 한 문장에 붙어 있다. 대중은 뒷부분을 더 크게 듣는다.
이 순간 사안의 성격이 바뀐다. ‘한 번의 실언’이던 것이 ‘고칠 생각이 없는 인식’으로 넘어간다. 비판의 표적도 더욱 이동한다. 발언에서 사람으로 완전히 옮겨 간다. 결정적 차이가 여기 있다. 실언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한다. 그러나 드러난 태도는 소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은 잊어도, 그 말을 대하는 태도는 오래 기억한다.
증상 3. 우호적인 소수를 전체 여론으로 착각한다
“제 말이 맞다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잘했다고 격려 전화가 옵니다.”
“인터넷 여론이 전부는 아니잖습니까. 조용한 다수는 다르게 봅니다.”
앞서 말한 허위합의효과가 발언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곁에 남은 몇 사람의 위로를 세상의 목소리로 착각한다. 특히 사퇴 요구가 이어지는 국면에서 이 발언은 최악으로 작동한다. 논란의 내용을 떠나 ‘이 사람은 상황을 읽는 능력이 없다’는 판단을 부른다. 여론의 재판은 사실상 단심제(單審制)다. 그런데 당사자만 아직 항소심이 남았다고 믿는다. 그 간극이 클수록 추락은 깊어진다.
증상 4. 언론을 탓한다
“앞뒤 다 잘리고 그 한마디만 나간 겁니다.”
“제 발언 전문을 보시면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기자가 악의적으로 편집한 거죠.”
“사실 아직 못 한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책임을 발언이 아니라 보도 구조로 넘기는 전형이다. 맥락이 잘려 나간 보도가 실제로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항변을 지금, 취재하는 기자에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론을 상대로 언론 탓을 하는 것은 취재진의 적대를 자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마지막 한마디는 특히 위험하다. “아직 못 한 이야기가 많다”는 암시는 후속 취재를 부르는 미끼가 된다. 아직 재료가 남아 있다고 기자에게 알려 주는 셈이다. 다음 기사의 소재를 당사자가 직접 제공하는 장면이다.
증상 5. 창구의 반쪽만 닫는다
정식 인터뷰 요청은 거절한다. 공식 입장문도 내지 않는다. 그런데 걸려 오는 전화는 다 받는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앞의 말들을 다 쏟아낸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는 ‘반쪽 홀딩’이다. 침묵도 아니고 준비된 발언도 아닌, 최악의 중간지대다. 결과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즉흥 발언만 골라서 세상에 유통시킨 꼴이 된다. 공식 채널로 나갔다면 몇 사람의 검토를 거쳤을 문장이, 사적인 통화라는 이유로 아무 여과 없이 활자화된다. 당사자는 “그건 사담이었다”고 하지만, 취재원의 발언에 사담은 없다.
닫을 것이면 정제된 서면 입장 한 줄로 닫아야 한다. 말할 것이면 준비된 메시지로 말해야 한다. 그 사이에 서 있는 것이 가장 나쁘다.
증상 6. 종결을 스스로 선언한다
“할 말은 다 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죠.”
“더 이상 드릴 말씀 없습니다.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겁니다.”
논란의 종결 시점을 당사자가 선언한다. 그러나 종결의 권한은 발화자에게 없다. 위기의 종료는 이해관계자들의 공유된 합의로 이루어진다.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여론이 시선을 옮기고, 관련 당사자들이 각자의 정리를 마칠 때 비로소 끝난다.
이미 판단이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이 선언은 마무리가 아닌 외면과 방치로 읽힌다. “이 사람은 수습할 생각이 없구나”라는 결정적인 신호가 된다. 끝내겠다는 선언이 오히려 국면을 연장시킨다.
증상 7. 공적 논란에 사적 사정으로 답한다
“저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평생 이 일에 헌신해 왔는데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저희 가족이 받을 상처는 생각 안 하십니까.”
“앞으로도 계속 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적인 자리에서 벌어진 논란에 사적인 생계와 심경으로 답하며 동정을 구한다. 이해관계자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다. 그 간극이 여기서 가장 크게 벌어진다. 겸양의 외피를 쓴 자기 연민은 거의 예외 없이 조롱의 소재가 된다. 상처 입은 쪽이 따로 있는 사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먼저 꺼내는 순간, 남아 있던 동정 여론마저 등을 돌린다.
일곱 증상을 관통하는 ‘전략적 저울의 부재’
이 일곱 가지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다. 전략적 저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이 저울이 작동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얻으려는 구체적 실익이 설계되지 않은 채 발화가 이루어진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앞서 살펴본 심리의 힘들이다. 억울함을 풀고 싶은 욕구가 전략을 밀어낸 상태다.
전략적인 설화 대응을 위한 세 줄의 처방
첫째, 정제된 서면 입장을 한 번만 낸다. 변명을 걷어내고, 유감과 성찰의 신호만 담는다. 짧을수록 좋다. 길어질수록 반드시 변명이 섞이기 때문이다.
둘째, 창구를 하나로 모으고 추가 개별 코멘트를 전면 중단한다. 전화도, 문자도, 사석의 한마디도 포함된다. 이 국면에서 사담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말에서 행동으로 옮겨 간다. 남은 신뢰는 발언이 아니라 직무로 회복된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시간이 어떤 해명보다 강력하다.
마지막으로 한 줄만 더한다. 정말 사과가 어렵다면 차라리 침묵이 차선이다. 가장 나쁜 것은 사과 없이 계속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 실수는 순간의 부주의였을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실패는 대부분 선택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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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더피알 [정용민의 Crisis Talk]에 연재한 칼럼입니다. 원문: 더피알